
배우 김호영(35)은 뮤지컬계의 주축이자 예능계 대세다. 이런 그에게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최적의 맞춤옷이다.
'광화문 연가'는 작곡가 이영훈(1960~2008)의 히트곡을 묶은 주크박스 뮤지컬. 주인공 '명우'가 임종 1분을 남기고
기억 또는 마음의 빈집 한편에 자리잡은 옛사랑 '수아'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이 주요 골격이다.
내년 1월20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광화문연가' 재연에서 김호영이 맡은 '월하'는 명우의 조력자다. 명우의 시간여행 안내자이자 극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미스터리 캐릭터다.
일종의 MC 같은 역으로, 이미 뮤지컬계 각급 행사의 MC로 '끼'를 뽐낸 김호영이 날아다닐 만하다.
MBC TV '라디오스타' 게스트, '복면가왕' 패널로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김호영은 뮤지컬계에서 유명했다.
김호영은 "16년 동안 뮤지컬을 해오면서 '광화문연가'만큼 대중적인 작품은 처음이에요"라면서 "사실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선뜻 하겠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라고 털어놓았다.
"방송 활동을 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는 와중에 이 작품을 하게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에요. 작년 초연 때 월하를 맡았던 정성화, 차지연씨가 너무 잘 했고 흥행도 잘 됐던 작품이잖아요.
요즘 뜨고 있는 김호영이 캐스팅됐는데 시너지 효과가 안 나오면···. 하하."
김호영의 괜한 걱정은 일단 접어도 된다. 그가 출연하는 날에는 낮에 하는 마티네 공연의 객석도 관객으로 가득하다.
'광화문연가'는 배우발이 아닌 명곡발이라며 자세를 낮추는 김호영은 "두 시간 반 동안 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 같은 공연"이라고 소개했다.
'광화문연가'에서 애드리브로 선보이는 김호영의 상당수 대사는, 사실 극본 그대로다. 그만큼 자기화가 탁월하다.
흡사 사물놀이에서 꽹과리를 맡은 연주자 또는 마당놀이를 열고 닫는 배우 같은 역의 월하는 김호영의 모습 그대로인 듯 보이기도 한다.
월하는 초월적이고 직관적인 인물. 이에 따라 무대 위 분위기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그리고 객석 등 극장 안의 전체 기운을 감지해야 한다.

"매일 같은 공연을 반복해야 하는 앙상블, 오케스트라는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어요. 날씨에 따라, 관객들의 그날 기분에 따라 공연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죠.
월하 그리고 월하는 연기하는 저도 여러 가지 부분들에 대해 촉각을 세워야 해요. 월하의 모든 대사, 행동이 큐가 되는 셈이죠. 그런 '노티스'를 명확하게 해주고 싶어서 에너지를 쏟아내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김호영은 예능계 대세일뿐더러 홈쇼핑 진행자, 트로트 가수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팔방미인이다. 최근 어느 시상식에서 '내년이 기대되는 예능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뮤지컬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라는 사실이 가려질 정도다.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출신으로 2002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했다. 이후 '모차르트 오페라 락' '라카지' '프리실라' 등 대형 작품에서 활약하며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예능물을 통해 높인 인지도는 그가 뮤지컬배우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예능의 이미지를 보고 공연을 보러 왔다가 뮤지컬배우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가기 때문이다.
김호영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항상 자신을 '뮤지컬배우'라고 분명히 소개한다. "'뮤지컬배우라 역시 무대 위에서 다르네'라는 말을 들을 때 기쁘고 감사하죠."
김호영은 뮤지컬계에서 중성적인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뮤지컬 '갬블러' '라카지' '프리실라'와 연극 '이(爾)'에 여장남자로 출연, 한 때 '여장남자 전문배우'로 불렸다.
이로 인해 '연기 좀 한다'는 세간의 평이 묻힌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의 섬세한 몰리나,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코믹 연기 정점을 선보인 '산초',
그리고 작심하고 이미지 변신을 위해 선택한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성장 드라마를 보여준 구두 회사 사장 '찰리' 등은 김호영이 아니면 내면을 끄집어내기 힘든 캐릭터들이었다.
김호영이 현명한 것은 그럼에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태도다. "제가 생각할 때 저는 '햄릿'을 할 수 있어요. 근데 그건 저만이 알고 있는 거죠. '상품적인 가치'로 제가 어떤 가치가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이 많아요."
사실 '킹키부츠'는 그가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 도전한 작품이다. 하지만 "작품 하나로 이미지가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부정이 아닌 긍정이다. 역시 뮤지컬계 '긍정왕자'다운 태도다.

"한 작품으로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는 없더라고요. 여러 것이 쌓아야 시너지 효과가 나오는 거죠. 20여년 전에 동국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을 때도
'TV에 당장 나오는 것 아닌가'라는 기대감을 가졌는데 현실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더라고요."
본인에게 연기와 작품 욕심이 있다는 것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당장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라고 수용했다.
예컨대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에서 자신은 변요한이 맡았던 '김희성'을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식이다.
"현재 김호영이라는 사람, 상품이 쓰이고 있는 분야는 예능이에요. 예능에서는 원하는 것이 분명하죠. 그런데 사실 저는 어디가나 뮤지컬배우라고 강조해요.
이순재, 신구 선생님은 오래도록 무대 위에서 연기하시잖아요. 저도 선생님들처럼 그 연세에도 연기하고 싶어요. 지금은 굳이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아요.
잠시 연기에 대한 야망과 욕심 관련해서는 '재생 버튼'이 아닌 '포즈 버튼'을 누르고 있다고 할까요. 누구나 계기와 전환점이 오잖아요.
대중들에게 더 인지도를 얻고 더 유명해지면 기회가 올 거라고 봐요. 물 흐르듯이 가고 싶어요. 대신 시도를 할 때즘에는 임팩트 있게 가야죠."
한때 자신을 상징하는 단어인 '호이'를 내세워 '호이컴퍼니'를 설립하고 양말 사업, 도시락 주문 제작 사업 등을 했던 그는 당분간 사업을 접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들 욕심까지는 버리지는 않았다. "제가 아이콘, 콘텐츠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호이스럽다'가 명사가 되고 형용사가 됐으면 해요.
그게 '시끄럽다' '산만하다' '다재다능하다' '재주가 많다' 등이 될 수 있겠죠.”
지금은 그 목표를 위해 다방면으로 인지도를 쌓는 중이다. 남들은 대세라고 하지만, 본인은 더 유명해져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오프라 윈프리처럼 토크쇼를 진행하며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기를 꿈꾸는 김호영은 그럼에도 자신이 살아내고 있는 삶의 원동력은 뮤지컬배우라는 점은 확실히 한다.
"제가 노래를 하고, 까불고,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뮤지컬계에서 17년차를 쌓아왔기 때문이에요. 이 분야에서 활동한 모든 것이 제게 도움이 됩니다.
노래하고 춤을 추고 연기를 하니, 제가 무엇을 해도 가볍게만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